|
앞에서
세계의 불가사의로 선정되는 대상과 그 수가 시대와 선정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세계
각지에 산재한 대상물들 중 '세계 몇 대 불가사의'로 지정된
대상이 어떠한 것들이고 또 누가 이러한 것을 정했는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불가사의라는 것을 정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겨 전파한 사람들은 대다수가 학식이 풍부한,
즉 정보가 많은 학자들이었는데 아마도 그들은 유명한 건축물들이
있다는 소문과 풍문을 듣고 직접 여행을 해가며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확인하거나 견문이 넓은 이들에게서 말로 전해
듣거나 문헌이나 기록으로 또는 여러 경로를 통한 구체적
증거들을 토대로 나름의 기준에 따라 세계의 불가사의를
선정했으리라 생각된다. 우선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보고 있는 이는 그리스의 문인이자 역사학자인
헤로도투스(B.C. 484~425)가 있는데 그는 [역사(Historiai)]
9권을 저술하여 오늘날 역사의 아버지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가 선정한 불가사의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바빌론의 공중정원이 있다. 시인으로 유명한 칼리마크도
불가사의에 대해 거론했다. 그는 불가사의에 포함되려면
기념물이 아름답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설명하면서
기념물이 위치한 주변, 즉 자연과 환경과도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역시 그리스의 역사학자였던 시실리의
디오도르, 로마의 건축가였던 비트뤼브, 그리스의 여행가였던
포사니아스, 그리스의 학자였던 코트렐 등이 각각 세계
7대 불가사의를 나름의 기준에 의해 선정했는데 이들이
선정한 대상들은 주로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전쟁 결과 형성된
헬레니즘 말기의 산물들과 로마제정시대에 만들어진 경이적인
건축물과 조형물 또는 조상(彫像)들이었다.
그러나 가장 유명하고 우리가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알고 있는 대상물을 선정한 이는 바로 필로(Philo)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선정한 '세계 7대 불가사의'가 일반에
알려지게 된 과정은 아주 우연에 의한 것이라 하겠는데
그에 관한 일화를 한번 살펴보자. 프랑스의 정치가인 뵈시우스는
프랑스 루이 13세에 의해 교황청 파견대사로 임명(1633)되어
바티칸으로 부임하게되는데 1626년 축성된 바티칸의 교황청도서관은
당시 최고의 양서를 보유한 지식의 보고로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각종 희귀고서 뿐 아니라 금지서적과 불온서적,
세계 각지에 파견된 수도사들에 의해 저술되고 수집된 보고자료,
희귀서류 등 방대한 분야의 전문 서지자료들이 수장되어
있을 뿐 아니라 특히 그리스 로마시대의 서적과 서류 및
자료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풍부하게 비치되어
있었다. 당시는 르네상스시대로 그리스 로마문화에 대한
붐이 일어 크나 큰 관심을 끌고 있었으며 교황청이 위치한
이탈리아는 그 중심으로 고대문화에 대한 관심은 하나의
시대정신으로까지 각광받았던 시기라 뵈시우스 또한 이에
영향받아 고대그리스 로마문명에 대한 관심과 학문에 대한
호기심으로 당시 교황이었던 우르바노 8세(Urbano VIII)의
허락하에 일반인의 접근과 열람이 제한된 도서관에 출입하며
여러 인문지식 및 정보를 얻고자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지리에 관한 서적과 서류를 뒤적이며 독서에
열중인 뵈시우스는 그 속에서 우연히 비잔틴 출신의 필로(Philo)가
작성한 '세계의 7개경관(De Septem Orbls Spectaculis)'이라는
원고를 발견하게 되는데 7장중 1장이 사라진 6장으로 된
원고에 기록된 세계의 불가사의에 대한 기록을 보고 그간
알지 못 했던 고대의 건축물들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를
얻게 된다. 원고의 저자인 필로는 본시 기계기술자로 이름이
높았으며 여러 책을 저술한 작가이자 언어학의 대가로 알려진
인물로 이전의 학자들이 한 두가지 단편적으로 설명한 세계의
불가사의를 나름의 체계를 가지고 세부적인 설명을 깃들여
종합적으로 해설해 놓고 그 중 7가지를 세계의 불가사의로
선정해 놓은 첫 인물이었다. 이상화된 고대그리스로마 시대의
동경과 시대적 관심은 필로의 세계7대 불가사의를 더 더욱
신비롭고 경이롭게 보이게 만들었으며 이는 뵈시우스 뿐
아니라 당시의 식자들에게도 크나 큰 반향과 흥미를 유발하게
되는데 프랑스로 돌아온 뵈시우스가 이를 알리면서 급속도로
대중에게 전파되고 여러 식자들에게 회자되면서 전 유럽으로
전해지게 된다. 결국 르네상스시기의 고대문화에 대한 동경과
신비한 경이로움, 태양왕 루이14세 때 유럽의 중심으로
군림한 프랑스의 영향력으로 필로가 정한 세계의 7대 불가사의는
전 유럽으로 전파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면서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후 세계의 불가사의에 대한 세인의 관심은 나름의 기준을
가진 학자들에 의해 제 각각 지정되며 수없이 많은 기념물과
건축물이 세계의 불가사의로 불리우게 되는데 이러한 난잡함을
해결코자 독일의 학자인 쇼트는 1891년에 불가사의가 될
만한 대상물이 갖추어야 하는 기준을 정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가 정한 기준에 의해 선정된 불가사의의 대상은
거대한 기념물이 주가 된 필론의 세계의 7대 불가사의 뿐
아니라 도시나 특정 조각품을 포함하여 이집트의 도시 테베시나
델로스의 제단을 포함하였고 그리스와 동방의 거대한 기념물과
시기적으로 그리스 시대보다 늦은 로마시대에 건축된 다수의
기념물도 포함하여 30개의 대상을 선정하여 발표하기도
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