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남부 윌트셔의 솔즈베리에서 북쪽으로
13킬로 되는 솔즈버리 평원(Salisbury Plain)의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돌들로 만들어진 원모양의 거석구조물. 현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고대 영어로 '공중에 걸쳐
있는 돌'이라는 뜻을 가진 스톤헨지는 고인돌과 더불어
서양의 고대 거석문화를 대표하는 구조물로서 외곽은 흙으로
된 구조물로 둘러 쌓여 있고 거대한 돌무더기(선돌)가
이중원형을 그리며 세워져 있다. BC3000년 경에 건립되기
시작하여 3차례에 걸친 구조변화 후 BC1560년경 신석기
시대 말기에 완성되어 현재의 형태를 갖게 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건립목적과 관련하여 종교적인 신전이나 제사를
모시던 곳, 천문관측을 위한 시설, 외계인이 좌표를 확인하기
위하여 제작한 표시, 고대 권력자의 무덤이라는 등 다양한
주장이 있으나 모두 확실치 않다.
1. 조성연대
탐사와 연구를 통해 BC
3000년 경부터 BC1100년경 신석기 시대 말기 까지 3차례의
크나 큰 구조적 변화와 추가적인 건축이 이루어 진 것으로
보고 있는데 1기에는 주로 흙을 쌓아 외곽의 외주구조물을
만들었고 이후 2기에는 400여 킬로미터나 떨어진 웨일즈
남서부의 프레슬리산에서 실어 온걸로 확인된 푸른 돌(청석(靑石,
blue stone))을 반입하여 사센서클과 트릴리손 중간에 배열함으로써
이중고리모양의 형태를 갖게 되었으며 3기에 이르러 스톤헨지
최대의 구축물인 트릴리손과 사센서클이 만들어지는데 이
3기는 다시 a, b, c의 시기에 걸쳐 구조적 변화를 갖은
걸로 알려지고 있다
2. 형태와 구조
스톤헨지는 원형, 고리모양으로
돌들을 줄줄이 세워 만든 환상열석(環狀列石) 구조물로
세계 곳곳에 산재한 것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유적이다.
비석형태의 거대한 돌들을 원형으로 세우고 다시 그 돌들로부터
30m정도의 거리를 두고 내부에 또 다시 원형으로 돌들을
세워 만든 이중원형(二重圓形)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내부의
원을 가리켜 사센서클이라 부르는데 이는 양편에 두개의
커다란 돌을 세워 놓고 그 위에 돌을 얹어 출입문(П)의
모습을 띤 3개의 돌로된 구조물이 빙 둘러 원형을 이루고
있는 형태이다. 중심에서부터 트릴리손, 사센서클, Z형
굴, Y형 굴, 오브레이 굴과 주위 도랑이 동심원모양으로
배열되어 있고 북동방향을 향해 방향표시석인 힐스톤을
세워 이를 외부통로와 이어 연결시켜 놓았다. 각각의 거석들은
모두 한 중심점을 향해 배열되어 있으며, 바깥 도랑과 둑,
네모꼴 광장과 힐스톤, 돌기둥을 세워 놓은 입석군(立石群),
중앙 석조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3. 제작방법
스톤헨지를 구성하고
있는 선돌 하나의 무게는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약 4톤에
달하며 가장 큰 사센서클의 돌은 50톤이 넘는 것도 있고
사센서클과 트릴리손 중간에 위치한 푸른 돌(청석(靑石,
blue stone))이 스톤헨지로부터 400여 킬로미터나 떨어진
웨일즈 남서부의 프레슬리산에서 실어 온걸로 확인됨에
따라 고대에 이를 제작한 이유와 그 목적 및 제작방법과
관련하여 세인의 호기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조성시기가
BC 3000년 경부터 BC1100년경 신석기 시대 말기라는 점에서
결국 기술이 미개하였던 시대 대부분 인력을 동원하여 제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아마도 썰매나 뗏목,
수레등 간단한 도구를 이용해 대규모의 인원이 자재의
운반과 구조물의 조성에 참여했으리라 보고 있다.
3. 쓰임새 및 조성목적
스톤헨지는 주위에 로마유적지
바쓰(bath)가 있던 관계로 로마의 유적지로 알려졌다 발굴과
조사를 통해 제작시기가 최소 신석기 시대 말기에 완성된
구조물로 확인되었다. 오늘날 영국에 남아있는 유물들은
대부분 청동기시대 이후의 것들로 그 이전 스톤헨지를 만든
석기시대의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알려주는 유물은 스톤헨지외
별다른 것이 없어 이들에 대한 그리고 스톤헨지를 만든
이유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건립목적과 관련해
무수한 주장과 억측이 제기되고 있으나 모두가 확실한 설명을
하지 못한 채 의문에 쌓여있으며 이러한 까닭에 현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신비감을 간직한 채 세인의 회자되고
있다.
1) 천문관측소라는
주장
힐스톤이라 불리는 방향표시석이
동쪽, 그것도 절기상 하지(夏至)때 해가 뜨는 방향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에서 스톤헨지를 천문관측소로 보는
설이 있다. G.S. 호킨스가 스톤헨지의 중심과 힐스톤을
잇는 선이 하지 때 일출방향을 가리킨다는 것에서 힌트를
얻어 제기한 설로 그는 하지(夏至)날 힐스톤이 가리키는
방향에서 해가 떠올라 중앙제단을 비췄던 시기를 천문학적으로
계산해 보면 BC 1840년이라는 추정연대가 나오는데 이 시기가
스톤헨지의 제작연도와 엇비슷하며 작물의 파종과 수확등
경작을 위해 고대에도 상당한 천문학적 지식을 갖추고 있었으며
이러한 지식을 이용하여 농업경작을 위한 천문관측의 목적으로
스톤헨지를 제작하였다는 것이다.
2) 신전 또는 제단이라는
설
아더왕시대의 마술사였던
멀린(Merlin)이 공중으로 돌을 날려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지방전설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이 곳에 스톤헨지를 만든
이유는 이 곳이 상서러운 기운, 신비한 마력이 깃든 신성한
곳이었기 때문이며 로마제국시대 영국을 통치한 로마인들도
스톤헨지를 신전으로 사용하였고 지역민들에 의해 아직도
근접하고 침범치 못하는 금기의 지역, 신성한 지대로 남아
스톤헨지가 경외의 대상으로 숭앙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해
신께 제사지내는 신전 또는 제단이라는 설이 자연스레 제기되어오고
있다. 이러한 믿음은 초자연적인 힘을 믿는 종교인들에
의해 강력히 제기되고 있고 스톤헨지를 신성시하며 경외하는
드류이드교인(Druids)들은 오늘날에도 하지때가 되면 이
곳에서 제사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3) 무덤이라는
주장
스톤헨지에 무덤의 흔적인
묘광(墓壙)이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고대의 권력자의 무덤이나
적어도 매장풍습과 관련된 구조물로 보는 학설이 있는데
스톤헨지가 옛날 지역 족장들의 매장의식에 이용되었다는
것은 널리 인정받고 있는 사실이다.
4) 외계인이 만든
구조물이라는 주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고
인구가 많지 않았을 고대에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이런
외딴 곳에 만들 능력과 이유가 없다는 것으로 도대체 누가
어떤 목적에서 만들었는지 이성적인 답을 찾을 수 없고
영국에 사람이 살고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 발견되는 시기가
신석기가 아닌 청동기시대이며 스톤헨지를 건축한 고대인의
흔적을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근거해 인간이
아닌 외계의 생명체가 우주선의 비행을 위해 필요한 좌표로
지상에 만들어 놓은 구조물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이는 스톤헨지를 둘러 싼 주위의 여러 지역에서 불가사의한
크랍
써클이 자주
발견되면서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는 주장이다.
5) 다산(多産)
을 기원하는 상징물이라는 주장
2003년
7월,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의 산부인과 전직교수인
앤소니 퍼크스는 공중에서 바라 본 스톤헨지의 형상이 여성의
성기 모양과 유사하다는 사실에 착안해 고대인이 다산(多産)을
기원하며 여성의 성기를 본 따 만든 상징물이라 주장하였다.
영국 의학협회 회지에 발표된 논문에서 그는 고대에 스톤헨지를
건설한 이들에게 있어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탄생과
죽음이었으며 스톤헨지를 공중에서 내려다 보면 여성의
성기와 뚜렷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는데 청석으로 쌓은
내부의 원은 소음순, 그둘레에 대사암(大砂岩) 으로 쌓은
큰 원은 대음순, 가운데 제단석은 음핵이며 중심부의 터진
통로는 산도(産道)를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 스톤헨지 인근의 우드헨지에서 발견된 어린이의 유해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근거라 할 수 있으며 고대인의
삶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던 자연과 땅에 대한 숭배의식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어머니 대지, 창조주 대지라는 개념이
고대사회에 널리 퍼졌고 대지를 모든 것의 어머니로 보고
모든 자연 만물이 대지로부터 나왔다는 의미로 어머니의
몸인 대지 위에 자연의 동, 식물들이 탄생해 나오는 입구,
즉 산도로써 스톤헨지를 만들었을 것이라 주장하였다.
4. 주변 지정학정 특성
스톤헨지에서 머지 않은 곳에는
스토운헨지와 구조가 비슷하고 나무로 만들었다고 하는
우드헨지(woodhenge)가 있으며 로마제국시기 영국을 지배한
로마인들의 고대 유적지 바쓰(bath)가 주변에 인접해 있다.
우리나라 고분과 모양이 흡사한 바로우(barrow), 즉 구릉형태의
고분과 분묘들이 산재해 있다. 스톤헨지 아래쪽엔 흙으로
쌓아 만든 길다란 둔덕형태의 커서스(cursus)라는 길이
있는데 폭 20미터에 2킬로에 걸쳐 일직선으로 뻗어있는
형태로 영국을 통치한 로마제국시대에 사용한 마차경주장으로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