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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농주의(重農主義, physiocrac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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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사][경영][회계][국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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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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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배경 1. 절대왕정과 중상주의 정책 태양왕 루이14세(1643~1715)에서 루이16세(1774~1792)가 통치한 절대왕정시기의 프랑스는 정부 주도하의 강력한 중상주의 정책을 시행하면서 상품의 판매 및 원료처로서의 식민지확보와 이를 위한 국제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유럽의 강대국들과 수 많은 전쟁을 치루게 된다. 특히 루이16세는 영국과 식민지 주도권 쟁탈에 나서 미국의 독립을 지원하며 영국과 전쟁(1785~1815)을 벌이다 패배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프랑스는 2400만에 달하던 인구가 1600여 만명으로 급감하고 국가경제는 극도의 혼란에 휩싸이며 파탄에 이르는 등 심각한 공황상황으로까지 추락하게 된다.
그 중 프랑스 전체 인구의 80%이상을 차지하는
농민들은 과중한 소작료, 각종 세금, 전쟁 등으로 인한 동원등에 따라
극심한 경제난을 격으며 피폐할 대로 피폐해졌으며 농민경제는 급기야
파탄지경에까지 내몰리게 된다.
3. 중농주의의 등장
이러한 시대상황하에서 농민경제의 심각성에 눈을 뜬 F.케네, ·V.R.미라보, F.P.M.리비에트, G.F.트론, D.네무르 등의 경제학자는 정부의 중상주의정책을 강력히 비난하고 생산적 토대로서 농업의 부흥을 통한 국부의 측적 및 이를 위한 경제활동에 있어서의 정부의 간섭배제와 자유방임을 주장하는 중농주의사상을 제창하게 된다. 이들은 금이나 은과 같은 귀금속화폐가 국부의 원천이 아니라 단지 생산물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이를 매개하는 수단에 불과할 뿐 이며 이 화폐로 표시되는 실질적인 생산물, 그 중에서 인간의 생명유지에 필수 불가결한 곡물을 생산할 수 있는 땅이 진정한 국부의 원천으로 농업만이 진정한 새로운 부를 생산할 뿐 상공업은 단지 농업에서 생산된 기존의 부를 가공하거나 교환·이전하는 기능을 수행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4. 중농주의의 의의
중농주의를 뜻하는 'physiocracy'는 '자연의 통치'를 의미하는 말로 중농주의자들은 '하는 대로 내 버려둬라, 가는 대로 내 버려둬라, 세계는 스스로 운행한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자연법칙에 의한 통치와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했다. 대표적 주창자였던 케네는 루이15세의 궁정시의로 인간에게 질병에 대한 자연치유력이 있듯 경제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경제현상에 있어서도 경제법칙이 무리없이 관철되고 있는 한 경제적 질환은 자연적으로 치유되게끔 만들어져 있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자연적 질서를 무시한 정부의 간섭과 의도적인 관여는 비자연적인 것으로 경제적 질병을 치유시키는 게 아니라 자연적 치유력을 해쳐 오히려 경제질환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여겼다. 케네를 비롯한 중농주의자들은 인간은 이기적 동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 활동하는 존재이므로 간섭없이 자유롭게 놓아두면 자연적인 인간본성에 따라 각 개인의 부를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며 이러한 개인들이 많아지면 결국 국가 전체의 부가 증진되는 방향으로 귀결될 것이므로 이러한 자연적인 질서를 방해하고 왜곡해선 안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중농주의사상가들의 주장은 철학적으로 자연법사상에 기반한 것으로 결국 경제활동의 자유를 주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자연법사상은 자연적 질서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데 이는 천부인권사상과 함께 경제활동의 자유와 사유재산제도를 보장하는 이론적 기반으로 작용한다. 즉, 인간의 생명은 신에게서 부여받은 것으로 세상의 그 무엇도 신의 권능을 능가할 수 없으므로 인간의 생명을 함부로 제약할 수 없고 인간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생명의 유지를 위해 생산활동에 참가하여 생산물을 생산하는데 이 생산물은 곧 인간의 생명유지, 신이 부여한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므로 개인의 생산물에 손을 대 개인의 생명유지를 방해하는 행위는 곧 신에 반하는 행위로 자연적 질서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자신이 생산한 생산물을 자신에게 귀속시키는 사유재산제도는 신의 섭리와 자연질서에 합당한 것으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국가권력도 이를 무시해서는 안되는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자연권이라 주장하였다. 또한 자신의 재산을 소유한 자가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는 사용권을 갇는 것 또한 당연하므로 개인이 생산활동에 참여하고 그로부터 생산물을 얻어 이를 사용하는 경제활동에 자유가 보장되어야 함은 자연질서에 합당한 정당한 권리라 주장하였다. 이러한 자연법사상과 이에 따른 경제활동의 자유보장 및 자유방임주의 이념은 당시 봉건제도를 타파하고자 하는 자본가 계급의 이해와 일치하여 이후 프랑스 시민혁명의 기본이념으로 시민자본주의를 형성하는 근본이념이 된다.
5. 케네의 경제표
중농주의학파의 대표자 케네는 [경제표(經濟表, Tableau Economique, 1758)]를 저술, 최초로 국민경제를 전체적인 측면에서 고찰하여 재화가 생산,유통,배분,소비 되는 과정을 밝혔는데 그는 이 책에서 사회적 부의 생산과 재생산 및 분배의 과정을 도표로써 나타냈다. 케네는 당시 프랑스 농촌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상인에 의해 도시로 이송되어 소모되거나 다른 수공업자의 손에 넘어가 물품으로 재생산된 뒤 최종 소비자에게 도달하여 소모되는 전 과정을 화폐의 이동과 물품의 이동으로 표시하여 하나의 도표로 만들고 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윤의 크기를 기록한 뒤 결국 국부의 원천이 잉여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토지에 있음을 주장하고 국부의 증진과 경제의 발전은 농촌과 농업의 부흥에 있다고 하였다. 그는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만이 생산에 투자한 비용을 초월하는 잉여생산물, 즉 순생산물을 만들어내며 다른 사람들은 단지 농민이 생산한 생산물을 교환하거나 이를 원료로 단순 가공하여 다시 교환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차익만을 획득할 뿐 잉여생산물을 만들어 내지 못하므로 곧 농촌, 즉 땅이 국부의 원천이며 따라서 농업을 장려하고 농촌을 발전시키는 정책을 펴는 것이 국부를 증진하고 나라를 부유하게 만드는 일이라 주장하면서 농민을 생산계급으로 다른 상공업자들은 비생산계급으로 분류하였다. 또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대농에 의한 농지의 경영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실질적으로 토지를 경작하는 소작농이 충분한 토지를 확보하고 소유할 수 있도록 토지거래와 토지소유의 자유를 촉진하고 자신의 생산물을 자유로이 판매하여 이득을 최대화할 수 있도록 소유와 처분의 자유를 확대하며 농민의 부역과 국가에 의한 동원을 면제, 농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이를 위해 현행 중상주의정책의 시정 및 국가에 의한 지나친 간섭과 규제를 철폐할 것을 역설하였다. 또한 비생산계급인 상공업자들은 잉여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므로 세금을 부과해서는 안되고 잉여생산물을 생산하는 토지의 소유자에게만 세금을 메기는 단일세제로 조세제도를 전환해야 한다고 보았다. 케네의 주장은 당시 몰락해가는 프랑스의 경제현실을 냉철히 조망해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 사회의 부조리를 개혁하고자 했던 실천적, 실증적 사회개혁안의 성격을 담고 있으며 자연법철학사상과 그 흐름을 같이함으로써 자유주의적 경제이념을 옹호하는 이론이라 평할 수 있다. 그의 사상은 당대에 즉각적인 반향을 일으켜 A.R.J. 튀르고가 추진하려 한 개혁정책의 주된 이론으로 작용하였고 이후 아담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사상으로 이어지며 고전학파에 큰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19세기 칼 마르크스와 오늘날의 L. 레온체프, P. 스라파의 경제적 이론형성에도 지대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6. 중농학파의 활동
케네의 주장은 프랑스 경제학자 및 관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루이16세 밑에서 재무장관으로 임명된 A.R.J. 튀르고는 케네의 이론을 직접 정책에 반영하는 개혁적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그는 먼저 봉건적인 직업조합을 폐지하고 곡물거래를 자유화한 뒤 농민에게 부과했던 부역을 면제하는 동시에 조세제도를 개혁하여 케네의 주장대로 잉여생산물을 만들지 못하는 상공업자들을 면세조치하고 토지의 소유자에게만 세금을 부과하는 토지단세론(土地單稅論)을 추진한다. 이는 당시 대부분의 프랑스 농토를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국가의 세금부과에서 면제되었던 지주들인 귀족과 성직자에게 세금을 부과, 국가재정을 늘리려는 의도였으나 결국 지배층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켜 튀르고는 재무장관직에서 면직되고 그의 토지단세론은 시행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케네의 주장은 이후 많은 경제학자들에 의해 수용되면서 C. 드 미라보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 중농학파의 형성과 경제정책의 수립 및 시행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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