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세기
영국의 에드워드 6세(Edward VI 1537.10.12 ~ 1553.7.6)에서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1533.9.3~1603.3.23)가 집권하던 시기 국왕의
재정고문으로 있었던 토마스 그레샴 경(Sir Thomas Gresham 1519
~1579)이 주장한 화폐법칙으로 흔히 '악화(惡貨)는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Bad many drives out good money.)'는 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레샴은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1533.9.3~1603.3.23)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나라에 실질가치를 달리하는 두 가지 이상의 소재로 된 귀금속
화폐가 동시에 같은 명목가치를 지니고 유통될 경우, 액면가치가
낮은 악화(惡貨)만이 국내에 남아 유통되고 액면가치가 높은 양화(良貨)는
국외로 유출되거나 저축수단으로 보관, 또는 축적됨으로써 유통기능을
상실,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는 현상이 발생함을 설명하고
외국환의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당시 금화(金貨)만을 유통시키는
단일본위제를 시행하고 있는 영국의 화폐제도를 복본위(複本位)제로 변경,
악화인 은화(銀貨)를 다시 주조해야 한다는 화폐개주를 역설하였는데
이 때 그가 보낸 편지 속에 나온 '악화(惡貨)는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Bad
many drives out good money.)'는 말을 1858년 H.D.마크로드가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으로 부르면서 하나의 경제법칙으로 통용되게
된 말이다.
그레샴의
법칙은 귀금속 주화(鑄貨)를 화폐(貨幣)로 사용하던 시기에는 일반법칙으로서의
효용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후, 지폐(紙幣)의 사용과 금본위제(金本位制)의
폐지 및 신용카드, 전화화폐가 통용되는 오늘날에 있어서는 더 이상
경제법칙으로서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오늘날엔
사회병리현상을 비판하는 용어로 자주 인용되고 있는데, 실제로
열등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 우월하거나 보다 나은 것을
추월하거나 억누를 때, 반사회적인 것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사용된다.
한 예로,
부정부패가 만연한 사회에서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지 못한다.'
또는 '너무 곧으면 부러진다.'는 말로 정직한 사람을 비난하거나
융통성이 없고 고지식한 사람으로 몰아세우는 어처구니 없는 경우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샴의 법칙이 적용되는 경우'로 지목하고
이를 '부정부패가 만연한 우리사회의 일면'이라 비판하는 경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
|
그레샴은
1952년 왕실재정을 위태롭게 한 헨리 8세(Henry VIII, 1491.6.28~1547.1.28)
명의의 채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왕실대리인의 신분으로 당시 유럽금융의
중심지였던 네델란드 안트베르텐에 파견되어 대부금의 기한 갱신협상,
저리융자 추가조달, 고리부채 상한등의 왕실부채 경감을 주임무로
왕실재정수입확충 및 무기조달과 관련된 일을 맡아 처리하게 된다.
그레샴의 노력으로 왕실부채는 상당부분 경감되었고 왕실의 재정과
방위력 또한 그레샴이 밀수입해 들여온 지금(地金)과 무기들로
을 굳건해짐은 물론 그레샴 본인 또한 엄청난 부를 축적, 영국 금융·실업계의
거물이 된다. 이 때 그레샴이 애용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악화로
양화를 거래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통용화폐는 귀금속 주화였는데 대부분 금과 은이 사용되었고 순금
또는 순은을 사용해 만든 주화도 일부 있었으나 일반적인 주화는
금 또는 은을 구리와 섞어 합금으로 만든 것들이었다. 모든 재화의
가격이 금 또는 은의 무게를 기준으로 결정되고 거래되기 때문에
금과 은이 섞인 주화가 일정한 명목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화에
포함되는 금 또는 은의 함량이 항상 일정해야만 하는데 당시 화폐주조권을
가진 국왕들은 왕실재정상황에 따라 그 함량을 변동시켜 제조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즉 100원으로 표시된 동화(銅貨)에 금 1 g이
포함되어야 한다면 재정이 안정되고 국고가 풍족할 경우에 정상적으로
금 1 g을 집어 넣고 100원 짜리 동전을 만들다가 전쟁이나
왕궁건축, 사치향락 등의 이유로 왕실재정이 악화되면 수시로 주입할
금의 양을 0.8 g, 0.7 g, 0.9 g으로 변경시켜 100짜리 동전을 만들거나
금화나 은화 제조시에도 질이 나쁜 저순도의 금, 또는 은을 사용해
만들어 유통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100원짜리 동전의 명목가치는
100원으로 똑 같지만 금의 함유량이 다르므로 실질가치는 동전에
포함된 금의 함량에 따라 80원, 70원, 90원으로 각기 달라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 사실을 국왕과 왕실재정 고문관들뿐 아니라 일반 상인들과
백성들도 다 알고 또 이런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나기에 항상 주화에
주입된 금과 은의 주입함량에 주목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즉, 국왕이
새로운 주화를 발행하게 되면 그 속에 함유된 금과 은의 실제 양이
얼마인지 바로 알려지게 되었고 사람들은 금과 은이 많이 첨가된
주화는 집에 쌓아두거나 녹여 금괴를 만들어 두고 밖에서 돈을
사용해야 할 때는 금과 은이 적게 들어간 주화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는 합리적
이기심, 좋은 것은 내가 갖고 나쁜 것은 남에게 주려는 인간의 당연한
본성에 따른 것으로 시간이 흐르자 자기 수중에 들어온 좋은 주화는
녹여 금궤로 만들거나 주화 그대로 창고에 숨겨 놓던지 해외에 금의
함량에 따라 명목가치 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팔아넘기게 되면서
결국 국내 시장에는 질 낮은 주화만이 돌아다니게 되었고 이는 상품가격의
상승을 불러 인플레를 유발하는 등 여러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그레샴이
왕실부채를 경감시키고 부를 축적한 방법이 바로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였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러한 주화속 금과 은의 함량에
대한 정보는 시간차를 두고 불공평하게 전달되었고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정보를 획득한 사람이 그 만큼 더 빨리 주화를 확보하거나
내 놓음으로써 더 큰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즉 대외채무변제에
있어서 교환비율 설정시간차를 이용한 차익거래를 할 수 있는데
예로 1파운드 주화와 1프랑의 주화에 금 1 g이 들어가 있다면 1파운드와
1프랑의 교환비율이 같아 서로 1:1로 교환할 수 있고 만약 영국왕실이
프랑스에 1만프랑의 채무를 져 이를 파운드로 변제코자 한다면 1
g의 금이 함유된 1파운드 주화 만개를 사용해 1만 파운드를 지불해야
한다. 이는 1만 g의 금을 빌렸으므로 다시 1만 g의 금으로 갚는다는
것인데 이때, 명목가치로는 모두 1파운드이나 1 g의 금이 함유된
1파운드가 아닌 금 0.9 g, 0.8 g 이 포함된 1파운드의 주화를 사용해
1만 파운드를 지불하면 1만 g의 금을 빌려 결국 9천 g 또는 8천
g의 금으로 변제한 꼴이 되므로 실질적으로는 거래시 마다 1000
g 또는 2천 g의 금을 덜 지불한 결과가 된다. 즉, 돈을 빌릴 땐
금이 많이 들어간 양화(良貨)로 빌려 갚을 땐 금이 적게 들어간
악화(惡貨)로 지불하면 결과적으로 이익이 되므로 외국환거래에
있어 크나 큰 이익을 거둘 수 있게 된다.
그는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하자 편지를 써 외국환 거래에 있어 악화(惡貨)를 통한
국부증진이 가능함을 설명하고 악화를 다시 주조하여 외국환의 지배권을
장악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력히 제기하였고, 결국 엘리자베스 1세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화폐의 개주(改鑄)를 단행하였을 뿐 아니라
그를 자신의 재정고문으로 임명(1958)하고 다시 유럽금융의
중심이었던 네덜란드의 대사로 파견(1959)하여 외국환 거래의 지배권을
장악하기 위한 중차대한 임무를 맡기게 된다.
|